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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녤옹] 온도의 차이

-오도독, 오도독


입안 가득 채워진 네모반듯한 형태의 시린 것에, 갈 곳을 잃은 혀의 더운 열기가 조금이나마 내린다. 그래도 더는 참을 수 없으니까, 다니엘은 이를 맞부딪혀 와그작 소리가 나도록 깨물었다. 마침내 까끌까끌한 형태로 부서져 산산조각 난 형태의 끝엔, 알싸한 커피의 향이 담겨있다.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, 엿 같은 촬영 현장. 처음부터 시키면 얼마나 좋아.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. 신사동은 왜 이렇게 언덕이 높은 거냐. 진짜. 혹여나 누가 들을라 나지막이 욕을 내뱉다가,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손에 쥔 음료 캐리어를 바라봤다. 아이스 아메리카노 다섯 잔, 아이스 라떼 한 잔 그리고 뜨거운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. 제발 내가 잘난 선배들과 실장님들의 주문을 제대로 받았으면, 하는 바람을 중얼거리며.











"커피 왔습니다!"


막내야, 왜 이렇게 늦었어. 아프리카로 커피콩 따러간 줄 알았다. 여기저기 시원한 커피를 향하는 손이 다급하다.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현대인의 생명수를 긴급하게 바치고 나니, 그제야 오늘의 할 일을 마친 기분이 들었다. 정신없는 촬영장 구석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. 이게 카라멜 마끼아또에요? 뜨거운 거, 잊지 않았네. 아주 느릿느릿하고 정확한 낮은 미성. 커피로 향하는 그 짧은 찰나에도 스태프들은 머리를 다듬고 옷을 핀으로 고정하느라 달라붙어 있었다. 여러 겹의 껍데기 속 정중앙. 마치 지구의 핵과 같은 존재랄까. 낮은 의자 위에 올려놓은 컵을 들어 올리려, 허리를 완전히 숙인 탓에 언뜻 그의 날카로운 턱을 틈새 사이로 엿본 것 같기도 하다. 이 더운 날에 뜨거운 커피라니,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다.











"어때요? 잘 나온 것 같아요?"


날카롭게 생긴 눈망울이 모니터를 향해 곧바로 내리꽂힌다. 아뿔싸, 선배의 명령으로 핸드폰으로 모니터를 찍다 빠져야 할 타이밍을 놓쳐, 각목처럼 서 있었던 게 잘못이다. 중요한 촬영에서 눈치없이 나대는 막내로 낙인찍히는 건 싫은데. 정신없이 동그란 버튼을 눌러대던 다니엘의 곁으로 훅 다가온 푸른, 초록의 향. 고개를 돌리자마자 목과 어깨를 시원하게 갈라놓은 셔츠 탓에 벌어진 가슴팍이 눈에 들어온다. 슬림하네, 희고. 모델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갑다. 네…, 멋있어요. 요즘 유행하는 해피 벌룬이라고 했던가. 풍선 가득 들어찬 공기를 들이키면 30초 정도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는. 낯설지만 백일몽같은 초록의 향이 그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. 모니터로 향하던 고개는 그의 손 끝으로 닿는다.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손이 딱 알맞다.











"처음 보는 친구네. 커피…, 고마워요."


휙, 몸을 틀며 건넨 말에 반사적으로 꾸벅, 고개를 숙였다. 수다스럽기로 유명한 선배 하나가 역시나 조잘스럽게 입을 뗀다. 어머, 성우씨. 내가 소개를 안 시켜줬네. 이번에 새로 들어온 막내 에디터, 강다니엘. 서툴러도 자기가 이해해줘. 꺄르르. 평소같이 넉살 좋은 웃음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건네야만 했는데… 아무래도 모니터 밖 바르고 정직한 외모를, 뜨거운 커피 향과 뒤섞여 토해내는 숨소리가 가까워진 게 문제다. 저도 모르게 손톱을 입으로 가져갔다. 달아오른 귀는, 지금 스튜디오의 사람이 많기 때문일거다. 방금 얼음을 깨물어 먹은 뒤로 더운 기가 사라졌는데… 갸우뚱. 그런 다니엘 모습을 바라보다 그는 손에 쥔 커피잔의 뚜껑을 열었다. 싱긋,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입으로 가져가는 그의 입매도 살며시 곡선이 그려졌다.











어쩌면, 얼음이 녹는 속도와 뜨거운 카라멜 마끼아또가 식어가는 속도가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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